유학 초기 정착 가이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예정)

유학 나오는 후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초기 정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비슷한 주제로 많이들 묻는다. 하도 여러 번 얘기하다 보니 비생산적인 것 같아 아예 따로 글을 쓴다. 인터넷에 있는 얘기도 많지만 오래되거나 틀린 내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오래되었거나 틀릴 수도 있으니 반드시 더블체크 하기를 권한다. 일단 이들 주제를 다룰 예정.

1. 현금은 얼마나 들고 와야 하고, 한국 ↔ 미국 송금은 어떻게 하나요

2. 어느 은행을 이용해야 할까요

3. 한국 번호는 어떻게 해 둬야 하고, 미국에서는 어느 통신사를 써야 하나요

4. 자동차 구입은 언제, 어떻게, 왜

5. 유학생을 위한 크레딧 빌딩 & 관리

블로그 플랫폼 이전?

이 블로그는 아마존 AWS 1년 무료 플랜을 이용해 클라우드 서버를 구축, 워드프레스를 설치한 환경이다. 무료 이용 기간 1년이 지난 5월에 끝나서 현재는 과금 중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고민 중이다. 일단 도메인은 1년 연장했다.

산타크로체님 같은 유명 블로거도 네이버 블로그를 쓰시는 마당에 일개 박사과정생의 잡문 블로그를 돈 내고 직접 유지보수하면서 운영하는 게 뭘까 싶긴 하다. (물론 앞으로도 네이버 블로그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자유도가 지금처럼 제한되지만 않았더라도 티스토리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이게 다 내가 되다 만 Geek이라 그렇긴 하다.

현재 검토중인 방안은,

  • 서버 이전
    • MS Azure 1년 무료 플랜으로 갈아타고, 1년 버틴 뒤 내년에도 블로그 하고 있다면 그 때 다시 고민할 것.
      • 장점: 무료(…)
      • 단점: 1년 뒤에 Azure에 정착할 것이 아니라면 품이 두 번 듬.
    • Google Cloud로 갈아탄다.
      • 장점: AWS에 비해 절반 수준인 가격.
      • 단점: AWS에 비해 워드프레스 구축 사례 찾기가 어렵다. 워드프레스 설치만 띡 하는 게 아니라, 클라우드 상에 nginx, myphp 이용해서 서버 구축을 해야 하는데, 되다만 Geek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할 수가 없다.
  • AWS 잔류
    • 장점: 이대로 쓰면 됨.
    • 단점: AWS는 업계에서도 가격이 비싼 축에 속함. 큰 돈 아니지만 연 단위로 환산하면 박사과정의 유리지갑에는 영향이 있음.

옮길 거면 방학을 이용해서 옮겨야 하긴 한다. 아마존 서버 PuTTY 비밀번호도 잊어버렸는데 큰일이다.

영화 <1987>.

<1987>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예정 밖 한국 방문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난 영화를 잘 알지 못하나 만듦새가 담백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특히 군상극 형식이 영화를 민주화에 기여한 모든 이들을 향한 헌사로 만들기에 알맞았다고 본다.

91년생인 나는 이 영화가 재현한 풍경을 기억하지 못한다. 현대사 서적과 만화(최규석과 <100℃>에 감사를!) 등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각별히 마음에 남는다. 가감할 것 없는 내러티브에서 비롯된 흡인력과 지난 겨울 촛불의 기억이 물론 한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가 우연히 갖게 된 연결고리다.

나는 박종운을 개인적으로 안다. 그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을 테다. 사적 발언 수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의 언행에서 사람의 자기합리화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박종철 열사 추모 기간이 돌아올 때면 그는 상태 메시지를 바꾸었다. “그러나 열사의 죽음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도 썼다. 그는 추모, 감사, 이용 등의 단어를 나와 다른 뜻으로 쓰는 듯 했다. 그가 영화를 보았을까? 보았다면 한 마디 스쳐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짐작하고 싶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추기경은 “카인의 대답입니다”(박종철 추모미사), “나를 밟고 가라”(87년 6월 13일, 나흘 전인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 피격)”는 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영화는 박종철로 시작해서 이한열로 끝나지 않는가. 다만 지금의 구성에 이 일화가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은 알겠다. 모든 것을 한 영화에 욱여넣을 수는 없으니.

말이 길었다. 민주화운동사의 모든 순간이 찬란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영광에 오롯이 집중하는 영화를 하나쯤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수학 교육과정은 왜 점점 이상해지는 것인가?

과외돌이 시험을 앞두고 문제풀이 리뷰해 준 뒤 든 잡상.

수학 과외 8년차.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수업하면 할수록 이상하다. 집합 개념 없이 함수를 가르친다거나, 도함수를 배울 예정이면서 계차수열은 삭제한다거나. 뜬금없이 초월함수(지수·로그·삼각함수)를 삭제한다거나. 등비수열은 남겨두고 지수함수만 삭제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지수와 로그를 안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내용 줄이겠다는 취지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렇게 앞뒤가 안 맞게 줄이면 곤란하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교과과정 분량을 줄여 수포자를 줄이겠다는 발상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다. 기초 단계 이해가 불충분해서 심화되는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보이는 것이지, 내용이 많아서 과부하 걸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주로 고등학생 과외를 했다. 수업을 해 보면 절대다수의 학생이 중학교 단계에서 배우는 등식의 의미(간단히 말해 “같다”와 “같아야 한다”)와 추상화(수-문자-식)의 의미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공사를 새로 하다 보면 사칙연산부터 다시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성적이 당장 오르지 않자 학부모는 선생을 자르고 마는데…)

가령 중학교에서 배우는 실수의 상등조건(a=b⇔a-b=0) 내지 대소관계는 기초적이면서 매우 중요하다. 얼핏 보면 당연해 보이니 대충 넘어간다. 저렇게 정의하는 이유나 필요를 몰라도 문제를 어느 정도 풀 수 있다. 그러나 윗 단계에서는 한계가 드러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은 아마 저 조건이 다른 수학적 대상에 대해 어떻게 바뀌는지 익히는 것, 같다는 조건을 차가 0이라는 조건으로 변형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테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고, 수가 식으로, 함수로 바뀔 때 매번 새로 암기한다. 이런 현상이 전 단원에 걸쳐 일어난다. 일일이 쓰자면… 여백이 모자라다. 당연히 학습 부진이 나타난다.

고등학교 때 나라고 다 알았을까. 그랬다면 이과에 갔을 거다(…) 과외를 오래 하고 수학공부도 계속하다 보니 과거에 무엇이 부족했었는지 깨닫는 것뿐이다. 이번 과외를 마치면 (자녀가 생긴다는 가정 하에) 적어도 10년은 관심 갖지 않겠지만, 8년간 지켜보니 교육과정은 점점 꼬이는 것 같다. 나보다 훨씬 수학공부 많이 한 분들이 만드실 텐데 이유가 뭘까.

최소주의-반지성주의 혼종

나는 미니멀리즘(또는 최소주의)과 반지성주의를 제 편한 대로 뒤섞는 부류를 매우 싫어한다. 이런 부류가 입에 달고 사는 대사가 있으니 “말이 너무 어렵다.”

저 태도의 정체는 “나는 좀 비뚜로 본다”는 자의식과잉이다. 저런 부류는 타인에게 입증/설득의무를 부과하지만, 이해할 의사가 별로 없다. 실상 설득이 아니라 자의식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볼썽사나운 것도 드물다. 모르면 모른다, 공부할 생각이 없으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저런 태도는 알을 깨고 나오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다. 생각이란 걸 하고 있다는 착각이야 개인의 자유다. 영원히 알 속에 갇혀 있겠다는 자유도 자유니까. 뭐, 그 안에서 관점놀음으로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래된 생각이다. 확실히 대선공약 갑론을박의 계절이 왔는지 저런 글이 타임라인에 몇 올라와서 써 보았다. 한 줄만 보태자면, 경험상 교회가 저런 태도가 싹트는 토양 중 가장 비옥한 축에 속한다. 대단히 유감이다.

인터뷰 준비 잡상

연구란 지식생산 활동을 말한다. 연구자의 소임은 지식생산이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생산이라고 부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만들어내야 한다.

만들어낸 결과가 인식 지평을 많이 넓힐수록 좋은 연구다. 전에 명지대 김두얼 교수님이 쓰신 일화를 빌려오면, “그 교수는 남들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상황을 놓고 중요한 직관을 도출한 논문을 쓰고 나면, 그것을 N명으로 일반화시키는 논문을 쓴다. (…) 그의 논문이 정말로 어떤 부가가치가 있나 보면 거의 0에 가깝다.” 어쨌든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남의 질문에서 출발한 연구가 좋을 수 있을까. 그보다, 난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이 고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그 교수가 나보다 훨씬 똑똑하겠지.)

나는 흐름을 파악하여 체계를 잡고 종합정리하는 데 능하다. 어디까지나 다른 능력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 지식생산은 아니다. 가공이라면 모를까. 당장 연재가 그렇다. 어느 정도 공부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석사논문도 미국에서 나왔던 연구결과를 한국에서 재현해 본 것이었다. 내생성 검증에 그치지 않고 생존분석을 이용해 주어진 문제에서 내생성의 함의를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좋은 질문? 글쎄.

끝까지 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딜레탕트로 남는 게 어떠냐는 회의가 공존한다. 지금라도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 굳이 끝까지 가 봐야 알겠느냐는 속삭임이다. 유학을 가고 박사를 받으면 이 양가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답은 얻을 게다. 어떤 방향이건.

예상 문답 준비는 마쳤건만 자문자답이 더 어렵다. 아, 자문자답은 영어로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하다. 그것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