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교과서 전쟁?

평소 학계 동향을 잘 전해주시는 기자님이 이번엔 경제학원론 계의 “대안교과서” 에 관한 기사를 써 주셨다.

“경제학 교과서 낡았다”…불신 커지는 유럽 대학가

경제학만큼 대중의 신뢰와 불신을 동시에 받는 학문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경제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이론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신을 강화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학문에 대한 실망이 확산됐다.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성장이 둔화하면서 불평등이 도드라졌다.

기사에서 언급된 <Economy>, 그러니까 Bowles 교수가 이끈 CORE 프로젝트 팀의 새 교과서는 샘플 챕터 몇 개만 읽어보았지만 몇 마디만 보탠다.

이건 주류-비주류 견해차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철학(교수법 철학?)의 차이가 아닐까.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가르칠 것인지, “사회”과학으로 가르칠 것인지의 문제라는 말이다. 이러한 견해차는 꽤 오래 된 것으로 아는데, CORE 팀 교과서는 후자를 대변하는 최초의 원론 교과서다.

기존 경제학 교과서는 우선 표준모형을 셋업하고 그 가정을 하나씩 완화하며 현실에 접근한다. 과학 과목에서 흔히 택하는 접근이다. 반면 <Economy>는 현실 문제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현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경제학과 학부생들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다른 사회과학 분과학문의 성과를 좀 더 반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교재로 수업하면서 이론적 기초도 잘 닦는 것은 어지간한 강의력으로 불가능하다. 원론 단계에서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가? 여기서 다시 교육철학으로 돌아온다.

굳이 한쪽을 택하라면, 나는 기존 방식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라 그런지 이론적 기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경제학원론 교과서가 현실과 멀다고 생각해서 학부 때 주화입마를 오래 겪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가치는 다양한 이슈를 관통하는 이론에 있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히려면 이론체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한쪽을 굳이 폄하할 이유는 없다. 교육에 관한 관점 차이일 뿐이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두 책을 상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어느 한 쪽이 주류경제학 교과서, 다른 쪽이 비주류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다. <Economy> 참고문헌 목록에는 최신 경제학 논문이 즐비하다.

하여 불필요한 대립 구도를 피했으면 한다. 기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무엇보다 《경제》가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 볼스 교수 등은 훔볼트대 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 결과 등을 들어 현재 경제학자들이 반드시 파헤쳐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불평등’이 꼽히고 있음을 역설한다. 불평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존 분위기와는 사뭇 톤이 다르다.” 불평등 연구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경제학자가 과연 있을까? 불평등의 존재를 용인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부유해 보이는 고급 아파트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허름한 판자촌이 형성된 모습을 담은 표지”는, 주류경제학계의 논문공장장 Daron Acemoglu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첫 장에서 소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학 교과서 전쟁?

경제학 교과서 전쟁?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첫 장에 등장하는 노갈레스(Nogales) 시. 이 도시의 북쪽(위 사진)은 미국 애리조나 주, 남쪽(아래 사진)은 멕시코에 속해 있다. 문자 그대로 벽 하나를 두고 소속 국가가 달라지는 것.

 

한편 이런 문장도 있다. “이들은 (..)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관계나 가격 설정 과정도 현실의 복잡함과 달리 매우 도식화돼 있다고 했다. (..) 또 현대 경제학의 기틀을 세운 이론 중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이론이나 존 내시의 게임이론 등 핵심적인 부분을 홀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부분은 Bowles 교수의 기고문을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 솔직히 그에게 묻고 싶다. 원론에서 이걸 다 다룰 수 있나?

기사에 언급된 폴 새뮤얼슨 경제학원론은 인간적으로 너무 낡은 게 맞다. 그 책 초판이 1948년에 나왔는데 지금은 2017년이다. 맨큐나 크루그먼 교과서도 수 차례 개정된 시점이다. 그렇다고 새 교과서가 나오지 않느냐? 아니다. Acemoglu-Leibson-List, Cowen-Tabarrok 등 젊은 저자들은 이론적 토대를 중심에 두면서 최대한 현실 문제를 다루려 애쓴다. 이들 교재는 특히 현대 경제학의 최대 성과인 실험과 실증을 책 구상 단계에서부터 고려하여, 2000년대 초중반 이전에 쓰인 교과서들과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실증과 실험을 염두에 두고 이론 설명을 전개하려면 그 전에 쓰인 책에 두어 장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보고 원론 수업 하라고 하면 A-L-L 공저를 주교재로 쓰고 <Economy>를 읽기 자료로 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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