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6월 초 경향신문에서 노동연구원 자료를 인용하여 “왜 여성 임금은 20대 후반부터 남성보다 떨어질까” 라는 표제의 기사를 냈다. 기사가 정리한 바를 옮겨오면 “남성의 임금은 연령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 40대 후반에 최고점을 맞고 점차 하락한다. 반면 여성은 20대 중반까지는 남성과 임금 격차가 없지만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남성 대비 상대임금이 감소한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급격하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금 더 쉽게 풀어쓰면,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 진입 직후에 발생하며 20대 후반-30대 초반에 급격히 확대된다. 그 후 남성 임금상승률이 여성을 압도하며 고착된다. 

논쟁적인 주제인 만큼 실증의 역할이 크다. 해당 보고서는 성별로 생애주기에 걸친 임금 변동 양상을 추정한 결과를 논거로 제시한다. 이는 통상의 성별-연령별 평균임금 단순비교에 비해 체계적이다. (*연령-소득곡선 추정이라고 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생애주기 경로를 따르므로 연령별 평균임금 단순비교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비교적 간단한 테크닉이지만, 최근 국내 데이터로 이런 분석을 한 자료는 내가 아는 한 이 보고서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여전히) 이런 현상이 관측되느냐는 것이다.

경력단절이 범인인가? 저자들은 경력단절을 겪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임금 변동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한다. 경력단절이 출산 후 임금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을 거의 설명하지 못하며, 최근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임금 격차 확대가 일자리 지속 여부보다는 결혼·출산이라는 생애사적 사건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맞벌이(였던) 부부들에게는 뻔하다 못해 진부할, 결혼-출산 전후 역할 분담, 그에 따른 부부 시간배분 전략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다. 기실 “M-커브”로 상징되는 한국의 악명 높은 경력단절 현상이 2010년대 후반 들어 서서히 완화 중이기도 하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경력단절과 무관하게 임금비 추세선은 하락한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M-커브는 완화되는 중이다.)

한국보다 사정이 낫다는 서구권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측된다. 지난 2월 북유럽 (스웨덴, 덴마크), 독일어권 (독일, 오스트리아), 영미권 (영국, 미국) 6개국 데이터를 동원하여 출산이 성별 임금격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해당 논문은 첫 출산 전후 성별 임금격차의 변동 양상을 분석한다. 곧, 출산 후 겪는 임금 하락을 “자녀 페널티”로 정의하고 자녀 페널티의 크기를 국제비교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도를 달리할 뿐 6개국 공히 여성이 더 심한 자녀 페널티를 겪는다.

여러 요인을 통제하고 나면 출산 이전 임금 변동 양상은 성별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한다. 출산 직전 자신의 임금을 기준으로, 남성 임금에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여성 임금은 출산 즉시 최소 20% (덴마크)에서 최대 90% (오스트리아) 하락하며, 시간이 흘러도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여성이 출산 5년차부터 10년차까지 겪는 남성 대비 손실은 연평균 최소 20-30%에서 (북유럽) 최대 50-60% (독일어권)에 달한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성이 일자리를 잃거나 (약한 형태의 경력단절),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여성의 시간당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영미에서는 경력단절이, 독일어권/북유럽에서는 노동시간이나 임금률 하락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고 보고한다. 세계 최고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작동하는 스칸디나비아에서조차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는 사실은 현상 배후에서 작동하는 사회경제적 힘의 크기를 시사한다. 한국에서 관찰된 현상 역시 유사한 메커니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육아부담으로 대표되는 각국의 문화나 젠더 규범이 죽여도 죽지 않는 히드라처럼 수면 밑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그 많은 노동시장 정책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논문에 따르면 육아휴직 확대 내지 육아보조 정책은 장기적으로 자녀 페널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단기에는 정책이 관용적일수록 페널티가 커진다. 가령 스웨덴 여성들이 덴마크 여성들에 비해 더 큰 임금 하락을 겪는 이유가 스웨덴 육아휴직 정책이 덴마크에 비해 “널널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 해석이 출산-육아정책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불이익이 가장 적지 않은가? 단지 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었거나 (자녀 페널티를 완화하지 못함), 긍정적 효과가 공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자녀 페널티를 유발). 강고한 시장주의자라면 경제정책은 만능이 아니며, 고용을 규제하면 임금이 반응한다는 단순한 원리가 재확인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편 스칸디나비아 사례는 저출산-성별 격차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다 선명히 드러낸다. 차별이 개입될 여지가 가장 적은 곳에서 나타나는 출산 전후 임금격차에 대해 차별과 직종분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의 자녀 페널티는 논문의 정의처럼 순수한 자녀양육의 비용, 한 명의 아이를 국가공동체에 공급하기 위해 여성들이 치르는 비용일 가능성이 크다. 남성 대비 20-30% 낮은 임금. 출산이 선택이 아니던 시절 저 비용은 청구될 수 없었다. 하여 대부분의 국민경제는 여성의 생산성을 지불하여 미래 세대를 얻는 균형에 머물렀다. 아예 출산아 수가 여성의 생산성을 의미하던 시대 역시 먼 과거가 아니다. 여성이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오늘에서야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누가 그 비용을 치를 것인가? 

유럽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한 다른 논문은 출산의 생물학적 주체, 여성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을 주문한다. 해당 연구는 가구 내 육아 분담 양상이 출산 결정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아이는 부부가 상호동의해야 탄생하는데, 육아 부담이 여성에 집중될수록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출산 국가에서 남성이 육아부담을 덜 부담했다. 여기서 가구 전체가 아니라 여성의 자녀 양육 부담 경감에 특화하는 정책이 효과적이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역시 국가공동체가 자녀 페널티의 원인을 없앨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개인적으로는 해당 논문의 결론에 동의한다. 생물학적 제약을 완전히 제거하는 <멋진 신세계> 식 중앙보육제도가 도래하지 않는 한 육아부담은 여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가계가 아이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 2018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 70%가 자녀를 원하지만 미혼 여성들은 50%만이 그렇게 응답했다. 여성들은 자녀를 원치 않는 이유로 자유를 잃으리라는 점을 들었다. 위 논문의 논지에 부합하는 사례다. 그들의 처방을 따르자면 이 수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여성에게 충분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10억을 주면서” 육아에 전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없던 설득력이 생겨난다는 밈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그런데 2015년만 해도 여성의 70%가 출산 의사를 밝혔다. 3년 동안 전국 가구 내 역할 분담이나 성별 임금격차 양상이 크게 바뀌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인식의 문제로 돌아오는데, 3년간 20%p라는 변화 속도는 다소 충격적이다. 더하여 아이를 원하는 미혼 남성의 비중 역시 3년간 10%p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혼 청년의 7-80%가 자녀를 원했다는 점을 신기해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데이터가 튀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이 급격한 변화를 이끈 요인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은 애석하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이들 연구가 주는 교훈은 답보다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경력단절 문제에 있어 한국의 변화는 긍정적이나, 인구감소와 젠더 갭을 동시에 상대한 해외 국가들이 먼저 도달한 미래가 마냥 장밋빛이 아닌 까닭이다. 한국은 그들의 정책처방을 따라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녀 페널티를 줄이는 정책을 벤치마킹할 것인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국가에서 서구의 질문과 답을 차용해야 하는가? 혹은, 우리는 정말 그런 정책처방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하는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제목 다는 것도 그렇고 쓰는 데 꽤 애먹었다. 이 주제를 오래 고민해 보았지만 내가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이 정도로 그치는 듯하다. 단기적인 처방은 그렇다 쳐도 장기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등교육 (human capital supply = efficiency unit supply) 은 정의 외부성 (positive externality) 의 교과서적 예시다. 교육의 개인적 편익이 사회적 편익에 미치지 못해서 교육(받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적게 공급되며, 따라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 한국은 인구공급 (단순 labor supply) 역시 이런 틀로 논의해야 할 때를 맞은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심이 있다.

 

학술 저작 레퍼런스:

노동연구원 보고서.

최세림, 방형준. 2018. “생애주기에 따른 성별 임금격차: 결혼과 출산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연구원.

논문 1. Kleven, Henrik, Camille Landais, Johanna Posch, Andreas Steinhauer, and Josef Zweimüller. 2019. “Child Penalties across Countries: Evidence and Explanations.” AEA Papers and Proceedings, 109 : 122-26.

논문 2. Doepke, Matthias, and Fabian Kindermann. 2019. “Bargaining over Babies: Theory, Evidence, and Policy Implications.” American Economic Review, 109 (9): 3264-3306.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1-(1). 톺아보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0. 들어가며

구약성서 레위기 27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어느 누구든지, 주에게 사람을 드리기로 서약하고, 그 사람에 해당되는 값을 돈으로 환산하여 드리기로 하였으면, 그 값은 다음과 같다.스무 살로부터 예순 살까지의 남자의 값은, 성소에서 사용되는 세겔로 쳐서 은 오십 세겔이고,  여자의 값은 삼십 세겔이다. …” (새번역 레위기 27:1-4. Fuchs (1971))

성 격차gender gap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노동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 성서 구절도 괄호 안에 쓰인 경제학 논문 도입부를 따온 겁니다. 연구 과정에서 여러 방법론을 탄생시키며 노동경제학 발전을 촉진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학계의 중심, 미국의 경우 1990년대 들어 각종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나 성 불평등은 완화되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젠더 대수렴The Great Gender Convergence“으로 명명했습니다(Claudia Goldin 하버드대 교수). 비슷한 맥락에서, 시대적 조류를 거스르는 현상(“Swimming Upstream”)이라 쓰기도 합니다(Francine Blau 코넬대 교수). “수렴”이 곧 완전 성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대폭 완화되었다는 점에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이 글은 한국의 성평등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손에 잡히는 숫자가 필요합니다.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지표는 뭐니뭐니해도 고용과 임금입니다. 이외에도 성 격차 지표가 많고 이 둘을 측정하는 방법도 여럿 있지만 여기서는 전통적인 지표를 택하겠습니다. 고용 지표로 경제활동참가율/고용률, 임금 지표로 시간당 임금 (그냥 임금이라 생각하면 됨)을 보겠습니다. 설명하겠지만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용어를 설명하겠습니다.


용어 설명

– 인구 분류:

노동시장을 분석할 때 인구를 보통 이렇게 분류합니다.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경제활동 상태에 따른 인구 분류

 

그리고,

경제활동참가율 = 경제활동인구/생산가능인구

고용률 = 취업자 / 생산가능인구,

실업률 = 실업자 / 생산가능인구

로 정의합니다. 생산가능인구 모두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면 경제활동참가율이 100%, 아무도 참가하지 않으면 0%가 되는 식입니다.

 

코호트:

어떤 특성을 공유하는 인구집단을 가리켜 코호트cohort라고 합니다. 가령 197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1970 출생코호트”, 1980-84년에 결혼한 사람들은 “1980-84 결혼코호트”입니다. 1970-74 출생코호트가 50-54세가 되는 2020년에 평균소득을 알아보려면 50-54세 자료를 보면 됩니다. 통계적으로 세대 차이를 감안하는 방법이라 생각하세요.

※ 표와 그래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 수치는 모두 퍼센트입니다.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한국 경제활동참가율은 최근 20년간 남성 70-75%, 여성 50% 내외로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20%p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요? 이 질문에서 출발해 보겠습니다. 성별 참가율을 연령별로 보면 이렇습니다.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15).

남성 참가율 곡선은 매끈하게 증가했다 감소합니다. 이런 형태를 흔히 역U자 곡선inverse-U shaped curve이라고 합니다. 반면 여성은 30대에 뚝 떨어졌다가 40대에 어느 정도 회복됩니다만, 벌어진 차이는 메워지지 않습니다. 20대는 남성을 앞서거나 비슷한데요. 보통 한국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곡선의 이런 형태를 “M-커브M-curve 현상”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결혼, 출산, 육아가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그건 세계 누구나 겪는 일 아니냐고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눈금 한 칸이 20%라는 데 주의하세요. 생각보다 큽니다.)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자료: ILO (2015). 출처는 본인의 석사학위논문.

다른 나라 여성 참가율 곡선은 한국 남성과 비슷한 역U자 형태입니다. 일본이 한국과 비슷한 M-커브 형태입니다.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인 국가 중 한국과 일본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일본은 최근 10년간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그림에서도 한국보다 일본 곡선이 더 위에 있습니다. 같은 연령대로 비교하면 일본 참가율이 더 높다는 말이지요. 한국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면 역U자 곡선의 일부가 되었을 여성들을 가리키는 단어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경력단절여성”, 줄여서 “경단녀”. 20%p 격차가 여기서 출발합니다.

아니, 미국은 무려 “수렴”했다고 하고, 일본도 나아졌다는데 한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요? 그래도 지난 세월 많이 나아졌습니다. 지난 50년간 데이터로 그린 연령별 참가율 곡선을 두 개 보겠습니다. 색깔이 진해질수록 현재와 가까워지고, 위로 올라올수록 “좋아지는”겁니다.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자료: 각년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위 그림은 연도별-연령별 참가율, 아래 그림은 연령별-코호트별 참가율입니다. 5년마다 15-19세 코호트를 새로 추적한 것입니다. 현재 30대 중반인 1995 15-19세 코호트 (1976-80년생) 까지만 의미가 있고, 그 뒤 코호트는 참고만 하십시오.

사실 경활참가율을 단순 연도별로 비교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2014년을 예로 들면, 해당연도 참가율 곡선엔 2014년 20-24세 집단(1986-90년생)과 55-59세 집단(1955-59년생)이 공존합니다. 단순히 이 자료를 이용해 비교하면 세대 차이가 무시됩니다. 코호트별로 보면 여성이 나이 들며 발생하는 변화를 세대별로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연도별 비교에는 시대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연도별 그림을 보면 50년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코호트별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20대 여성의 참가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습니다. 맨 처음 그림(2015)에서도 20대에는 성별 격차가 거의 없었지요. 그런데 코호트별로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35세 이상으로 가면 코호트별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일자리가 없대도 그렇지, 30년 차이가 나는 1966 코호트와 1995 코호트에 기껏해야 5%p 차이밖에 없다니요. (잠깐! 20대 초반 참가율이 1985 코호트 이후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교육 확대입니다.)

이 숫자들은 채용 차별이 과거에 비해 완화된 것이 사실이나 직장-가정생활 병행이 여전히 어렵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창 육아에 바쁠 35-44세 참가율에 코호트별 차이가 없다시피 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한편 20대 참가율 상승은 여성들이 대학에 더 많이 가고, 결혼이 늦어지며 과거 20대에 그만두던 사람들이 30대에 그만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조삼모사 같지만 그럼에도 30대 참가율은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느리게나마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2001년 11월 정부는 일-가정 양립 정책의 일환으로 출산전후휴가 기간을 60일에서 90일로 확대했습니다. 늘어난 30일분의 급여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육아휴직 급여도 고용보험기금으로 지급하기 시작했지요. 이 때부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자 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산휴가가 1953년, 육아휴직이 1987년에 도입되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늦었습니다. 이듬해부터 집계된 통계를 보면 30대 참가율이 하락하지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modern_footnote]이 통계는 공식 자료를 기반으로 제가 산출한 것이라 오차가 있습니다. 심각하진 않을 거고, 있더라도 실제보다 높은 수치는 아닐 겁니다. 현실이 이 통계보다는 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적당히 참고하세요. 설명은 마지막에 나옵니다.[/modern_footnote].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자료: 각년도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고용보험 DB

간신히 한 자리 수를 유지하는 2002년 수치가 말합니다. 사용이 어느 정도 되어야 집계되는 법이라고요. 다른 자료를 보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70년대부터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라는 이름으로 인구·가족 관련 조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 그러니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관한 내용도 다룹니다. 그런데 2006년에야 이 항목이 포함되었습니다. 법 개정 직후인 2003년 즈음에는 집계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간의 변화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보시다시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모두 사용률이 급상승했습니다. 출산휴가가 보장되는 직장에서 육아휴직도 보장될 거라고 가정하면, 출산휴가 쓰는 사람의 90% 가까이가 육아휴직도 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둘 중 하나만 쓰는 사람이 있으니 저 정도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추세가 바뀌진 않을 겁니다.) 실질적인 육아조건이 대단히 개선된 것입니다. 이게 30대 참가율이 하락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실질 보장 수준이 저렇게 향상되었다면, 보장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역시 자료를 보겠습니다[modern_footnote]이 표의 수치는 좀 큽니다. 2011년 이후에 마지막으로 출산한 사람들 중 한 번이라도 제도를 활용한 사람이면 사용했다고 응답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 사용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몇 년치가 누적되었다는 것이지요.[/modern_footnote].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1: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주: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서 인용. 편의를 위해 주요 수치 위주로 재편집.

위에서 언급한 보건사회연구원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주로 공공기관 근무자, 관리·전문직들입니다.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라는 인식이 여지없이 확인됩니다. 파란 상자를 보면, 현재 경력단절을 겪는 사람들조차 다른 직장·직종 평균 내지 이상으로 출산육아 보조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만 써먹고 있다기보다는 아직 일반 직장에서 제도가 널리 활용되고 있지 않은 것이지요.

한편 경력단절 여성의 경우 비단절 여성에 비해 전반적으로 사용률이 낮습니다. 보조제도 사용과 경력단절 여부 사이에 매우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보조제도가 경력단절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직장으로, 보통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직장으로 간다면 제도보다 성향의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쇼, 이런 보조제도를 곤란해하는 직장이라면 애초에 여성 채용을 꺼리는 곳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들 공무원 교사 하려는 거라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요.” 옳은 말씀입니다. 문제는 현상의 원인이 정말 차별이냐는 질문 역시 가능하다는 겁니다. 역시 매우 오랫동안 연구된 주제입니다. 이렇게 성별로 종사산업이나 직종이 나뉘는 현상을 성별 직종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라고 합니다. 아니 이 작자가 보자보자하니까 도대체 뭐라는거야? 싶으시다면 조금 더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다음 글에서 성별 직종분리를 다루겠습니다.


(참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사용률 산출 방법

사용률은 (정책 수혜자 수) / (일하는 산모 수)로 계산합니다. 분자와 분모를 어디서 얻었는지 설명하면 되겠지요. 먼저 분자를 보겠습니다. 국가통계포털 KOSIS에는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출산휴가, 육아휴직 사용자 수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출휴, 육휴 급여를 국가에서 받은 사람 수입니다. 이걸 가져왔습니다.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체 종사자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보다 적은 수치입니다.

분모가 문제죠. 출산 중 사고로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는 미미하다고 하고, 쌍둥이를 감안하고 나면 출생아 수는 산모 수와 같습니다. 여기에 연도별 평균 가임기 여성 (15-49세) 고용률을 곱해 분모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오차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전체 추세를 보려고 하는 것이니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듯 보건사회연구원 자료는 회고적 자료 (과거 기억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연도 자료 (횡단면)를 보려면, 보다 복잡한 보정을 하지 않는다면 이 정도가 최선이겠습니다. 논문 쓰는 건 아니니까요.

내용이 좀 심심하죠? 뭘 이리 장황하게 썼나… 싶을 수도 있는데, 민감한 주제기도 하고, 단편적인 수치 나열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써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 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 노잼 숫자놀음을 누가 읽을지 모르겠지만요. ^^

 

성평등, 아직도 가야 할 길: 들어가는 글

포스팅 예고.

한 해 동안 젠더 이슈가 많았습니다. 논의를 따라가며, 여성 노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 노동경제학 전공자로서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논의가 주로 용어, 태도, 문화에 국한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 이론과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성평등, 혹은 성차별 문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 주제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학계 밖으로 나오면 몇 가지 수치만 단편적, 편의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제의 중요성과 축적된 연구성과에 비해 알려진 바가 적고, 일반 독자를 위한 글도 찾기 어려운 것 같아 노트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논문도 아니고 방대한 문헌을 다 요약할 순 없으니 정말 기초적인 몇 가지만 다룹니다. (여러 개 다룰 만큼 알지도 못합니다. 언젠가 시리즈를 쓰고 싶은데, 그 프리퀄 격으로 생각합니다.) 다루는 주제나 내용이 특별히 새롭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통계를 소개하고 이론적 설명을 좀 달았습니다. 관련 연구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법한 내용이고, 몇몇 통계는 통념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는 정도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안 팔릴 건 압니다. 일단 그래프가 많이 나오거든요. 최대한 쉽게 써 보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려 합니다. 거창하게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이 글은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통계가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입니다.